미술관에서 요가하기
예술 작품에 둘러싸인 채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펴낸다. 전시의 열기를 더하는 건 관람객이 아닌 요가 도반이다.
공간만 바꿔도 평소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안다. 새로운 분위기는 흩어진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몸과 마음에 리프레시를 가져온다. 회사보다 카페에서 일이 잘되고, 집 앞 공원에만 가면 요가원에서 안 되던 아사나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미술관 요가’도 그렇다. 보자르 양식으로 지은 웅장한 공간 안에 줄지어 깔린 요가 매트, 그 위에 운동복을 입고 앉아 있는 사람들. 여느 때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마주한 이 장면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뉴욕의 브루클린 뮤지엄이 매년 가을이면 진행하는 요가 명상 클래스의 한 장면이다. 브루클린 뮤지엄은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만남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가능성을 확장한다’는 모토에 걸맞게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선보이는데,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이 ‘아트’와 ‘요가’다. 찾아보니 국내에도 요가 클래스를 진행하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적지 않다. 요가원에 가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 요가 수업을 위해 마곡에 위치한 스페이스K 서울을 찾았다.
오전 9시, 넓은 전시장에 온기가 감돌기 전이었지만, 요가 매트를 짊어진 참여자들로 가득했다. 일본 작가 유이치 히라코의 ‘Wooden Wood 49’(2023) 옆에 매트를 깔고 앉았다. 평소 전시를 관람할 때는 작품 보호를 위해 일정 거리를 두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작품을 볼 수 있다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마치 이 전시가 오직 나만을 위해, 오늘의 수업만을 위해 열린 듯했다. 미술관의 차분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하타 요가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은 유튜브 채널 ‘려경요가’로 유명한 김려경 강사가 맡았다. 집에서 혼자 요가 할 때 자주 봐서인지 친숙했다. 기본적인 하타 요가 시퀀스 안에서 나비자세라고도 하는 받다코나 아사나, 비둘기를 닮은 에카파다 라자 카포타 아사나 등 골반을 여는 아사나 위주로 움직임을 이어갔다. 본래 골반 주변 근육이 타이트한 데다 날도 추워서인지 괜찮았던 근육도 전부 짧아진 듯했다. 그렇게 매트 위에서 강사의 안내에 따라 낑낑대며 천천히 몸을 푸는 동안, 쌀쌀하던 미술관 공기는 참여자의 온기로
공간이 될 수 있는 미술관이 요가와 만났을 때 새로운 시너지를 낸다는 걸 깨닫고 나니 나도 모르게 전시 관람을 위해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로 작품을 바라보게 됐다. 김려경 강사는 미술관에서의 수업이 일반 수업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사물에도 고유한 파동이 있어요. 미술관 특성상 작가의 애정이 담긴 작품에 둘러싸여 호흡하다 보니 더 조심스럽고 고요한 느낌이 가득하네요. 그만큼 참여자의 호흡도 차분해지면서 집중이 잘되는 듯합니다.” 스페이스K 서울의 신사임 큐레이터는 요가 수업의 기획 의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2020년 개관을 앞두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할 때, 팔레드도쿄, 뉴욕 현대미술관(MoMA), 브루클린 뮤지엄 등 여러 해외 미술관의 사례가 큰 도움이 됐어요. 참여자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개관 당시 팬데믹의 영향으로 요가 클래스를 바로 열지는 못했지만, 2022년 2월을 시작으로 2년째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신사임 큐레이터는 미술관 요가가 사랑받는 이유로 매번 바뀌는 전시에 따라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 요가가 끝나고 나면 참여자에게 전시 도슨트를 제공한다는 점, 평소 만나고 싶은 요가 강사를 프라이빗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실제 4회에 걸친 2월 수업을 모두 수강한 한 참가자는 “집이나 요가원에서 수업을 들을 때는 느끼기 힘든 개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평소 유튜브로만 보던 강사를 직접 만나 궁금한 점도 편하게 물어볼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새로운 경험과 시각이 쌓이고 쌓여 나 자신을 더욱 발전시킨다. “‘이색 공간에서의 경험은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확장된 사고방식을 갖게 한다’고 생각한다”는 김려경 강사의 이야기처럼, 반복적인 일상에 젖어 있기보다는 계속 시도하고 기존에 알던 것도 다르게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이 뒷받침될 때에야 비로소 신선한 자극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미술관이 아닌 또 다른 제3의 공간을 찾아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