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을 먹는 효소?
새로운 의류 폐기물 처리반! 슈퍼 효소가 플라스틱을 해치우는 시대가 오고 있다.
미세먼지가 극심해지는 환절기엔 효소 파우더 클렌저를 사용한다. 단백질을 분해하고 기름을 제거하는 효소의 효능이 얼굴을 더 깨끗하고 보송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효소’를 친근하게 느끼는 까닭은 몇 년 전 이너뷰티 업계를 강타한 효소 다이어트 덕도 있다. 규칙적인 운동과 적절한 식이요법을 병행해야겠지만, ‘먹기만 해도 살이 빠져요’라는 효소 보조제 광고 문구는 건강한 몸매를 가꾸기 위한 이들 사이에서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곡물이나 과일에서 추출한 효소 보조제가 체내에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분해함과 동시에 몸에 좋은 영양소는 빠르게 흡수하도록 돕는 ‘촉매제’ 기능을 한다. 그런데 이 효소,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패션의 미래를 위한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바로 플라스틱을 먹는 효소가 등장했기 때문!
2016년 일본의 한 바닷가 플라스틱 침전물에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박테리아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가 처음 발견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당 박테리아 진화 과정에 관심을 가진 영국의 한 연구 팀은 태양빛보다 100억 배 강한 엑스레이 빛을 투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합성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PETase’ 변종 효소를 찾아냈다. PETase는 1차적으로 PET 합성수지를 분해하고, 여기서 나온 MHET라는 2차 생성물을 MHETase 효소가 분해한다. 이들 효소가 작동한 후 최종적으로 나온 찌꺼기 물질은 바다에 사는 미생물의 에너지원이 되기 때문에 PET 분해뿐 아니라 생태계 순환에 이로운 역할까지 도모한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데 있어서는 효율성이 역부족이었다. 여러 해를 거쳐 연구한 끝에 PETase와 MHETase를 물리적으로 결합해 각각 따로 작용했을 때보다 무려 6배 빠르게 반응하도록 만든 ‘슈퍼 효소(Super Enzyme)’를 개발했다. 이 밖에 플라스틱을 먹는 효소를 상용화하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중이다. 이런 효소가 제대로 힘을 발휘한다면 지속가능한 패션 생태계를 위해 어떤 실질적인 기능을 하게 될까?
패션 업계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것이 연간 약 9200만 미터톤에 달하는 직물 폐기물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수치에 따르면, 실제 폐기물에서 재활용되는 건 전체의 15%에 못 미치는 수준. 게다가 폐기물 중 수백만 개의 제품에는 독성 화학물질, 미세 플라스틱이 포함되는데, 특히 요가 팬츠처럼 폴리에스테르, 스판덱스, 아크릴, 나일론 등 화학섬유를 함유한 기능성 스포츠웨어를 분해할 때는 토지로 침출되는 기타 유해 독소 발생을 피할 수 없다. 또 의류 폐기물 분해에 주로 쓰이는 화학적 재활용 공정은 높은 수준의 열과 다량의 용매가 사용된다. 이때 플라스틱을 먹는 효소를 이용한 생체 촉매의 경우 보다 친환경적인 대안을 제공하며 물 소비 감소, 에너지 절약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어들게 하는 이점을 제공한다.
효소를 의류 폐기물 분해에 접목한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지난 5월 중순부터 룰루레몬이 투자하고 협업사로 채택한 호주 스타트업 삼사라 에코(Samsara Eco)가 있다. 삼사라 에코는 수천만 미터톤에 이르는 플라스틱 폐기물 중 연간 150만 미터톤을 재활용하는 프로세스를 개발했다. 이를 통해 재활용하기 어려운 플라스틱, 오염된 플라스틱, 혼합 플라스틱, 염색을 위한 첨가물이 포함된 플라스틱을 탄소 중립인 저열 환경에서 처리한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효소로 하여금 새 생명을 얻은 재생 플라스틱은 버진 플라스틱과 똑같은 견뢰도를 자랑한다는 것. ‘무제한 재생’을 목표로 하는 삼사라 에코의 공정에 따르면,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의류 폐기물을 최초의 강도를 유지한 채 계속 재사용할 수 있다. 처음보다 강도와 기능이 현격히 떨어져 한 번 재활용된 이후에는 결국 폐기해야 했던 재생 섬유의 가장 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런 효소 프로세스를 갖춘 또 다른 곳으로는 프랑스 스타트업 카르비오스(Carbios)가 있다. 캘빈 클라인과 타미 힐피거 등 유명 브랜드를 보유한 PVH와 파타고니아, 푸마, 살로몬 같은 스포츠 브랜드와 협력해온 카르비오스는 작년 유색 직물 폐기물에 효소를 가해 백색 재활용 섬유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한편 미국 스타트업 프로틴 에볼루션(Protein Evolution)은 스텔라 매카트니가 주목하는 곳이다. 이 회사는 스텔라 매카트니의 과거 컬렉션에서 사용하지 않은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원단을 공급받아 효소 기반의 생물학적 독점 기술로 분해하고, ‘새것과 같은’ 섬유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난 6월 미국 볼트 스레드(Bolt Threads)의 비건 레더 마일로(Mylo)가 돌연 생산을 중단하며 그간 패션 업계가 지향해온 지속가능한 대안에 빨간불이 켜졌다.
마일로는 버섯을 가죽처럼 만든 친환경 소재로 럭셔리 그룹 케링부터 아디다스, 스텔라 매카트니, 룰루레몬 등 지구와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여러 브랜드에서 공들여 투자하고 지속적으로 제품 개발에 힘써온 비건 레더였다. 하지만 실제 가죽에 못 미치는 텍스처와 견뢰도 때문에 지속적으로 성장하기엔 부족함이 드러났고, 결국 회사의 규모 확장에 필요한 투자금 부족 문제로 아쉬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 볼트 스레드 CEO 댄 위드마이어는 “현재와 미래에 더 부합하는 것이 무엇인지 평가하기 위해 마일로 개발을 일시 중단합니다”라고 밝혔다. 이 시점에 플라스틱을 해치우는 효소는 미래 에코 패션의 대항마로 이목을 집중시킨다. 마일로 소재와 마찬가지로 효소 접근 방식이 상업적으로 실행 가능할지를 판단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환경과 지속가능성은 소수의 움직임만으로 해내기 어려운 분야.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관심으로 우리 모두가 효소의 미래 가능성을 응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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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최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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